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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조가 가득한 모터 라이프

S&T 트로이 125 구매기 - 영혼까지 털린 첫 라이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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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

날 좀 풀렸다고 무모하게 바이크 타고 나갔다가 얼어붙은 김냉동랜덤 입니다.

지난 번 홍대 나들이 이후로 이렇게 뼛속까지 냉기가 스며들었던 날은 별로 없었던 듯 합니다. 그러길래 왜 사고를 내가지고 이 날씨에 바이크를

심지어 바닥에 물이 있어서 슬립 할 뻔하고 나니, 11월 말에 비슷한 일을 겪고 나서 시즌 오프를 결심했다는 것에 생각이 미쳐 꽤나 머쓱하네요. 요런 일을 겪고 나서 겨드랑이가 축축하고 긴장감 때문에 열이 확 올라오니 마치 바이크를 처음 샀을 때와 비슷하기도 합니다. 하이퍼모타드를 거의 만 1년 정도 탔는데도 아직도 익숙해지지 않는 것이 그 때 느낌이 나기도 하구요.

그러면 기왕 얘기 나온 김에 제가 처음으로 제 소유의 바이크를 샀을 때의 이야기를 한 번 꺼내 볼까 합니다. 정보성 내용은 아니라 그냥 구매기 및 집으로 돌아오기 위한 사투 비슷한 거네요.

때는 바야흐로 2014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겨드랑이가 축축하여 심히 불쾌하니 잠시 예의를 잊고 회상 모드로 빠져 음슴체로 가보도록 하겠슴미드

 

S&T 트로이 125 구매기 영혼까지 털린 첫 라이딩

Buying S&T Troy 125 – First Ride, being soulless being

첫 바이크라 더욱 각별했던 트로이 125



1. 2종 소형 면허가 있으면 용감 해진다

저는 바알못이다. 지금도 바알못이지만, 예전에는 훨씬 정도가 심한 바알못 이었다. 학창시절 남들 다 타는 아니 다 그렇지 않은데 엑시브나 펄아이도 안타본, 심지어 씨티100의 안장에도 앉아보지 못한 진짜 레알 바알못 이다. 그러던 제가 바이크를 타고자 했던 것은 굉장히 단순한 이유들이었다.

l  제가 바이크를 타고자 했던 이유
- 기름값이 많이 들지 않는다는 얘기(연비가 좋다는 얘기)를 들어서
-
더 이상 자전거 페달을 밟기가 싫어서 (…)
-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심에서는 더 빨리 다니고 싶어서
-
주차 문제에 시달리고 싶지 않아서

참으로 현실적이지 않은가. 비록 나중에 정면으로 대치되는 변태같은 선택을 하고 말지만

바이크의 종류는 고사하고 어떻게 타는지도 모르는 상황이었으니 저는 면허를 사면서 따면서 바이크 타는 방법을 익히자는 결심을 하게 된다. 그러므로 학원에 등록하여 바이크를 배웠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여러분, 바이크를 한 번도 탄 경험이 없어도 바이크는 생각보다 금방 배울 수 있다. 자전거를 탈 수 있다면 바이크는 크게 다르지 않다. 단지 조금 많이 신경 써야 하는 것들이 늘어날 뿐이다. 어려우면 어떡하지 라는 고민에 빠져 있는 분들이 있다면 주저 말고 당장 시작하길 권장 드린다. 자전거 조차 타지 못한다면 한 번 재고해 볼 필요는 있다

2종 소형 면허를 따는 것은 생각보다 그렇게 어렵지는 않았다. 비록 좁은 장내 시험장 에서였지만, 무겁고 커다란 데이 스타를 타고 미묘한 코스들을 왔다 갔다 하며 근거 없는 자신감이 쌓이기 시작했고, 이러한 자신감은 남들 다 통과하는 면허 시험에 합격하면서 절정을 이뤘다.

면허 시험장에서 처음 접하는 탈 것들은 면허 따고 나서 사고싶어지는 걸로 보아 일종의 마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면허를 손에 쥐고 이제 나는 바이크를 탈 수 있다고 생각했다. 도심 주행을 한 번도 해보진 않았지만 도로에 나가도 괜찮지 않을까? 라는 것이 당시 나의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생각이었다.

그리하여 학원에 다닐 때부터 꽤나 고심하며 골랐던 바이크를, 탁송 받지 않고 사서 집에 타고 오기로 결정해 버리고야 만다.

이가 얼마나 무모한 생각 이었는지를 깨달은 것은 바이크를 산지 1시간도 안된 시점이었다.

 

 

2. 어떤 바이크를 골랐는가?

다들 자신의 취향이 확고해 지기 전까지 그러하듯, 저도 바이크를 고르기까지는 꽤나 많은 고뇌가 있었다. 더군다나 바이크라고는 안장에도 앉아보지 못한 바알못이라 그 고뇌와 번민이 얼마나 컸던 지에 대해서는 상상에 맡기도록 하겠다. 뭘 해 봤어야 알지

보통 바이크를 보면 사람들이 가장 많이 꽂히는 분야가 수퍼스포트SuperSport. 매끈한 카울, 날렵한 외형, 엄청난 달리기 성능 등, 수퍼스포트 모델을 보고도 반응이 없다면 당사자의 미적 감각을 의심해 봐야 할 정도다. 하지만 그 비싼 돈 주고 하고 많은 것들 중 86을 산 비범한 취향의 소유자인 저는 수퍼스포트 모델들이 예쁘다고 생각하지만 일상 생활에서 타고 싶지는 않았다. 물론 주신다면 받는다 엄청나게 불편한 자세로 오랜 시간 도심을 주행할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나이도 별로 안 들었는데 벌써부터 편한 것을 찾게 되더이다.

제가 가장 큰 매력을 느꼈던 장르는 흔히 F차로 불리는 네이키드Naked 그거 아니다 모델들인데, 어느 정도의 편의성과 주행성능을 모두 갖추고 있다는 점이 제가 크게 매력을 느낀 부분이었다. 더불어 늘씬하고 매끈한 수퍼스포트 모델들에 비해 투박하고 기계적인 매력이 물씬 풍기는 그 외형은 정말 매혹적이었다. 수퍼스포트가 미래지향적 사이버 펑크라고 하면 네이키드는 일종의 디젤 펑크적 감각 이라고나 할까.

이렇게 네이키드로 장르를 정하고 실제 모델을 고르기 위해 파들어 가는데, 트래커Tracker, 혹은 듀얼 퍼포즈Dual Purpose 라는 장르가 눈에 밟히는 것이다. 자전거 탈 때의 경험이 좀 크게 작용한 듯 하다.

저는 로드 바이크를 주로 탔는데, 거의 오프로드나 다름없는 대부분의 공도나 자전거 전용 도로 덕분에 꽤나 힘겨웠던 기억이 많다. 도심의 공도가 이럴진대 날렵하게 쌩쌩 달리는 것보다는 어느 정도 험로 주파성을 지닌 것이 낫지 않겠는가 라는 것이 제 생각이었던 것이다. 물론 이 레벨에서는 다 고만고만 하다는 것을 몰랐던 때의 생각이다

그리고 저렴해야 할 것을 염두에 두다 보니 절로 국산에 눈길이 가게 됐다. 사실 제가 원하는 모든 조건을 갖춘 바이크는 이미 존재했는데, 야마하의 TW200이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가격도 가격이고, 정식으로 수입이 되지 않는 놈이라 유지보수 측면에서 좀 마음에 걸렸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 마이너 카피 모델인 S&T트로이 125로 저의 첫 바이크를 정하게 된다. 2소 따 놓고서 왜 125cc를 사기로 했는지는 저도 모르겠다

트로이 125의 매력 포인트인 뚱뚱한 뒷바퀴


상기한 내용들은 그냥 저의 주관적인 선택의 과정을 기술한 것 뿐이니, 바이크를 선택하기 위해 고심하시는 분들이 있다면 그냥 이렇게 생각했던 사람도 있구나 라고 가볍게 읽어주시기 바란다. 사람마다 취향은 다양한 것이 아니겠는가.

 

 

3. 결제할 때까지의 우여곡절

바이크를 사기로 마음 먹기 까지는 쉬웠는데, 실제로 구매하기까지의 과정이 조금 고되어 적어보고자 한다.

저는 한 푼이 아쉬운 풍족하지 못한 사람이라, 제게는 무엇을 사느냐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사느냐도 꽤나 중요한 사안이었다. 일단 제가 스스로 알아볼 수 있는 방법, 즉 오픈 마켓이나 각종 동호회의 구매기를 참고하여 대략적인 가격대의 데이터 베이스를 만들어 놓고 이를 기반으로 유명하고 싸게 준다는 샵들을 수소문하여 일단 전화로 문의하기 시작했다.

저는 바이크를 처음 구매하는 것이고, 단골 샵을 만들어 놓을 용의가 있었기 때문에 제가 거주하는 지역 중심으로 주로 알아보았는데, 이 때는 최저가는 아니더라도 안면 트는 셈 치고 어느 정도 가격대만 맞으면 구매할 용의가 있었다. 바이크 유지 보수에 대해 1도 모르는 상황에서 샵을 튼다는 것은, 최소한 제게는 엄청난 의미가 있는 일이었다. 물론 이런 식으로 바이크를 구매해도 실질적으로 유지 보수에 도움이 크게 되지는 않겠지만, 그 당시의 생각은 그랬다.

저도 일을 다니고 있는 입장이라 직접 알아보지는 못하고 전화로 연락하여 알아보기로 하였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여러 샵 사장님들의 태도가 뜻뜨 미지근 한 것이다. 후술하겠지만 그 분들도 여러 가지 사정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은 이해한다. 그리고 저는 당시에도 어느 정도 눈치를 채고 제가 알아봤던 최저가를 먼저 밝히면서 최대한 줄다리기를 하지 않고 직접적으로 가격 협상이 가능한지 여쭤봤고, 그보다 낮게 줄 수 없다는 얘기를 들어도 최대한 성심 성의껏 말씀 드리고 정중히 대화를 진행했다.

그렇게 계속 오픈 마켓 최저가보다 낮은 곳을 찾지 못하여 제가 리스팅 해놓은 가게들의 목록의 대부분에 가로줄이 쳐졌을 즈음, 드디어 글쎄요보고 말씀 나누시죠 라는 반응을 듣게 된다. 저 애매모호한 글쎄요 라는 말이 어찌나 반가웠던지. 그래서 그 샵 사장님께 그 날 저녁 언제까지 찾아 뵙고 말씀 나누자고 약속을 잡고 전화를 끊었다.

그런데 퇴근하고 신나서 찾아간 샵에는 사장님이 없었다. 그 때 자리를 지키고 있었던 점원의 말에 따르면 잠깐 자리를 비운 것도 아니고 퇴근을 하셨단다. 어안이 벙벙하여 오늘 저녁 7시에 만나 뵙기로 약속했는데 무슨 말씀이냐고 반문했더니 전화를 해 본단다. 그리고 전화를 바꿔주는 것도 아니고 한참을 통화하더니 전화를 끊는 것이다. 그리고 점원이 내게 와서 말하길,

그 가격에는 안 팔겠다고 한다. 그냥 가시라고 했단다.

뭔가 긴 이야기가 있을 줄 알았나? 아니다. 저게 다다. 순간 열을 받기 보다는 굉장히 서럽고 속상했다.

여타 사장님들의 미적지근했던 태도에는 이런 배후 사정이 있었다. 일단 제가 사기로 한 트로이 125는 입문용 모델이고, 가격도 비즈니스 모델들을 제외하면 거의 최저가 모델이라 업체로서는 이익이 크게 남지 않는다. 가격이 싸기에 제품을 찾는 사람들은 대부분 학생들이고, 한 푼이 아쉬운 학생들로서는 말도 안되는 억지를 써가며 현장 네고를 시도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한다. 더불어 전화로 가격을 문의하는 경우는 그냥 찔러보는 것이 대부분이라 별로 성의껏 응대하지 않는 것이 보통이라고 한다.

제가 찾아갔던 샵의 사장님도 아마 이런 일들을 많이 겪었을 것이고, 그래서 그냥 뜨내기들 중 하나겠거니 하고 생각했기에 이렇게 응대한 것일지도 모른다. 사장님으로서는 일종의 복수를 했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이건 도를 넘어서서 무례하기 까지 한 것 아닌가. 내가 어떤 대우를 받기 원했던 것은 아니지만 이런 정도의 대접 밖에 받지 못한단 말인가 라는 생각이 들면서 꽤나 인생 서글프다고 느꼈다.

그리고 인간 불신에 빠져 지역 커뮤니티고 신의고 나발이고 그냥 온라인 최저가를 마킹하는 곳에서 바이크를 질러버리고 만다.

 

 

4. 산 바이크는 머나먼 곳에

시간이 좀 되어 정확히 기억이 정확하진 않지만 서울에서도 꽤나 서쪽이었고, 사당을 지나온 것을 보면 아마 대림역 근처 어딘가에서 바이크를 구매했던 것 같다. 근처에 바이크 샵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던 것으로 보아 거의 확실한 것 같다는 느낌이 있다.

대림 역을 기준으로 하면 제가 거주하는 성남을 기준으로 볼 때 거의 37km에 달하는 도심 여정이고 그 중 85% 이상이 시내 주행이다. 초보자, 그것도 시내 주행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사람에게 절대 추천할 만한 거리와 환경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뭣도 몰랐던 저는 2종 소형 면허 버프가 가시지 않아 굉장히 겁이 없는 상태였으므로, 탁송비 5만원을 아끼고자 이를 강행하기로 마음먹는다. 야 이 미친놈아 왜 그랬어

이것이 저의 첫 라이딩 이었다


 

5. 이거 기름 어떻게 넣어요?

앞으로 어떤 고행길이 펼쳐질지 상상도 못한 채, 바이크를 산다는 생각에 마냥 신이 난 저는 헬멧과 장갑을 덜렁덜렁 들고 해맑게 바이크 샵에 도착했다. 처음 탄다는 주제에 신차 박스를 깠다

이 때의 설렘은 아는 사람만 안다

다행히 사장님과 일하시는 분 모두 꽤나 친절한 분들이었다. 이 때는 한참 종전의 일로 트라우마에 시달려 인간 불신이 정점에 달했을 때임에도 불구하고 어느 정도 마음을 열게 만드는 친절함 이었다. 그래서 저는 어차피 결제한 것, 거리낄 것이 없어 그냥 바닥을 드러내기로 했다.

바이크나 차나, 보통 내연기관을 가진 탈 것을 구매하게 되면 연료는 대부분 최소한, 즉 바로 근처의 주유소를 갈 수 있을 정도만 넣어져 있다. 업체로서도 서비스 마인드나 재정이 지나치게 풍족한 경우가 아니라면 굳이 그렇게 할 필요가 없지 않을까 싶다.

그런 연유에서 제가 바닥을 드러내기로 작정하고 한 질문은 이랬다.

이거 기름 어떻게 넣어요?”

저는 차는 조금 알지만 바이크는 전혀 몰라요를 조금 복잡하게 줄인 질문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 때 사장님이 지었던 표정이 아직도 잊혀지지가 않는다. 그것은 참으로 복잡미묘한 것이었는데, 온갖 종류의 걱정, 예를 들면 이거 가다가 넘어지고 와서 새걸로 바꿔달라고 할 진상이 아닌가 부터 시작하여 이 손님 제대로 집에 갈 수나 있을까와 같은 이타적인 것에 이르기까지 굉장히 복합적인 것이었다. 하지만 노련한 사장님은 이내 표정을 잘 갈무리하고 큰 결심이 비치는 얼굴로 내게 모든 것을 속성으로 교육하기 시작했다. 정말 감사할 따름이다.

결국 그 동네 몇 바퀴를 도는 것부터 시작하여 사장님의 최단기간 속성 교육으로 그럭저럭 시동을 꺼지는 횟수를 꽤나 줄여 나간 것은 그로부터 약 40분 뒤였다. 하지만 아직까지 주유소에 가는 것은 자신이 없어 결국 사장님께 카드를 드리고 부탁해버렸다. 불쌍한 사장님 다른 의미로 진상이었던 셈이다.

그렇게 기름도 가득 채웠겠다. 저는 드디어 집으로의 원대한 여정을 시작하게 된다.

 

 

6. 저한테 왜 그랬어요?

제가 염세적 세계관을 지니게 된 사건 중 하나가 발생한 것도 이 때였다. 네비게이션이 제게 알려준 길은 노들길을 지나 (여기까진 괜찮다) 영등포 사거리 테헤란로강남대로를 통과하여 양재를 지나 구룡산 어귀를 넘는 코스였던 것이다. 바이크를 시작한지 3년이 지난 지금 생각해도 막막한 길인데 그 때는 어찌했지 싶다. 뭘 어쩌긴 어째 아무 것도 몰랐고 거길 지나갈 줄도 몰랐지 처음 바이크를 타는 입장에서 저 코스를 지나라고 알려준다면 아무리 긍정적인 사람이라도 세상에 대한 불신이 조금은 생기지 않을까 싶다.

제가 준비했던 것은 헬멧과 장갑 뿐이었고, 휴대폰 거치대나 세나 같은 것은 당연히 없었다. 알지도 못했으니까 그래서 네비게이션은 그냥 참고용으로 가는 도중도중에 서서 보기로 하고 진짜 대책 없었다 마냥 신난 마음에 출발을 해버린 것이다. 지금 제가 그때의 저에게 한마디를 전할 수 있다면 미친 짓 그만하고 탁송을 부르라고 할 것이다.

사실 뭐 꽤나 신나긴 했다. 생각해보라. 처음으로 제 명의로 차량이 생겼다. 게다가 현금 완납이고, 제 명의로 등록까지 한 차량인 것이다. 더군다나 바이크다. 어찌 침착할 수 있겠는가.

집 키 외의 키를 들고 다니게 됐다는 점이 시사하는 바는 크다


그렇게 출발하여, 네비게이션을 볼 수 없고 심지어 들을 수 조차 없으니 표지판만 보고 가다가 길을 잘못 들기를 부지기수, 시동을 꺼트리는 것은 당연지사, 아직 바이크의 속도감에 익숙하지도 않고 조작도 서툴어 빨리 가는 것은 고사하고 시속 40km 대를 유지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날은 적당히 시원한, 약간 서늘하다고 할 수 있을 그런 날씨였지만 제 겨드랑이에는 크로스핏을 한시간 정도 쉼 없이 풀로 뛴 것 같은 거대한 반점이 생겨 있었고 다행히 겉옷을 입고 있어서 밖으로 드러나는 치욕은 겪지 않았다 상하의 가릴 것 없이 온통 땀에 젖었다. 또 다행히 지리지는 않았다

마침 시간은 어쩌다 보니 퇴근 시간과 겹쳐, 저는 그 교통 지옥의 한가운데서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르며 위태위태하게 바이크를 몰고 움직일 수 밖에 없었다. 차를 되돌리거나 갓길로 댈 수도 없었다. 운전을 처음 할 때, 차선 변경이 그토록 힘든 일이었던 그 때를 생각하면 쉽다. 더군다나 바퀴가 2개인데다가 생전 처음 느껴보는 무게가 사타구니 사이에 있을 때의 그 당혹스러움으로 도저히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도중 도중 이렇게 많이도 쉬었다


집에 오면서 담배 한 갑을 다 폈던 것 같다. 그리고 드디어 폭삭 젖은 몸을 이끌고 힘겹게 집 앞에 도착했을 때는 해가 완전히 져서 어둑어둑 해진 뒤였다. 대림에서 성남까지 거의 4시간 가까이 걸린 것이다.

비록 다음날 몸살이 오긴 했지만, 이렇게 무사히 집에 돌아올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대책 없이 용감했던 것 같다.

 

 

7. 즐거웠던 첫 바이크

첫 라이딩은 이처럼 개같이 힘들었지만 그 뒤로 125cc의 성능이 제 욕심에 못 미친다는 느낌이 들 때까지 약 1년간, 정말 즐겁고 부담 없이 잘 탔던 것 같다. 풀 스로틀을 감기 까지는 1달 여가 걸렸지만 그 과정조차 재밌었고, 카울과 연료 탱크까지 풀로 다 갈아도 비용이 십 만원을 넘지 않는다는 사실은 일말의 불안감 조차 날려버릴 정도로 큰 것이어서 더욱 편하게 탈 수 있었다. 그래서 저는 바이크에 입문하는 분들께 국산 125cc 중고를 권하는 편이다.

트로이는 뒷타이어가 매우 뚱뚱하다는 특성상 가속감이 떨어지고 동급에 비해서 연비가 그렇게 좋지 않은 편이며 힘도 떨어지지만, 그런 둔중한 특성이 오히려 바이크에 친숙해지는데 좀 더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더군다나 세미 오프로드 정도는 커버할 수 있는 트래커 스타일이고 상술했듯 부품값도 굉장히 싼 편이었기 때문에 부담 없이 막 다루며 탈 수 있어 바이크를 다루는 경험 향상에 도움이 많이 됐다. 크기로는 웬만한 미들급 바이크와 견줄 수 있을 정도이기 때문에 나중에 큰 바이크를 타게 됐을 때도 별로 당황하지 않는 뭔가 이상한 부수효과도 볼 수 있었다. 그 외에도 거동이라던가 반응성을 볼 때, 지금 생각해도 트로이는 참 재미있는 바이크다. 더불어 바이크가 생김으로써 행동 반경이 훨씬 넓어 진 것은 덤이다.

이렇게 같이 많은 곳을함께 할 수 있었다


여튼 이렇게 저는 첫 바이크를 마련하게 됐다. 첫 라이딩이 워낙 다이나믹한 경험이었기에 이젠 시동을 꺼트리는 경우는 없을 것이라 자부하게 되었지만, 그 뒤로 이와 유사한 경험을 한 번 더 하게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일단 이 때까지는 제 바이크 인생에서 제일 힘들었던 때는 이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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