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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조가 가득한 모터 라이프

왜 저는 86을 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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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

차알못인데 어찌저찌 86을 사게 되어 패션카로 열심히 타고 있는 김랜덤 입니다.

휘찌로꾸가 어느덧 1살이 넘었습니다. 번호판 달고 세도 1년이 넘었네요.

이를 기념하기 위하여 왜 차가 아니라 제가 쓰는지 모르겠지만 1년 간의 기억과 경험을 바탕삼아 시승기 비슷한 리뷰를 한 번 써볼까 합니다.

왜 하필 이 차를 샀는지, 뭐 그런 오너의 복잡미묘한 심정을 묘사한 컨텐츠가 그렇게 많지 않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제가 차알못이라서 설명이 많이 부족할 것 같지만 그래도 일기 쓰는 셈 치고 한 번 써보겠습니다. 구매를 고려하시는 분들이 이 차를 사지 않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제 복잡미묘한 심정을 다루는 내용인 만큼 방언과 같은 터져나옴을 위해 본문에서는 예의범절을 잠시 잊도록 하겠습니다핑계가 참 많다


휘찌로꾸, 1년의 추억
A Year with Hwichiroku



1. 왜 이 차 샀어요?

...는 아마 86을 타면서 가장 많이 듣는 이야기 중 하나일 듯 하다여기에 콤보로 따라 붙는 후속타로는 "그 돈이면 차라리..." 가 있다

저는 굉장히 고민을 많이 하고 산 차기 때문에 이런 질문을 들으면 자신 있고 명쾌하게 대답을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막상 예상하던 질문을 들어도 말문이 턱 막히더라.

처음에는 차 예쁘다고 감탄하던 사람들도 가격을 들으면 "ㅎㅎ...." 라는 반응을 보이는 것이 일반적이다.

도대체 왜 취등록세 포함 4,600만원 정도나 되는 돈을 주고 이름도 없고 잘 모르는 이런 차를 샀냐고 한단 말이다오너 속 뒤집어지는 줄은 모르고

그렇다... 사실 이 가격에 이 차를 사기 위해서는 굉장히 비이성적인 판단과 자신을 기만할 수 있는 비겁함이 필요하다.

그래서 대체 왜 제가 이 차를 샀는지에 대해 얘기를 한 번 해보고자 한다.

 

2. 그래서 왜죠?

제가 차를 사기 전에 고려하던 조건이 몇 가지 있었다. 그 조건은 이렇다.

* 제가 차를 사려고 할 때 고려했던 조건
    -
차가 크지 않을 것
    -
후륜구동일 것
    -
수동을 뽑을 수 있을 것
    -
무게 중심이 낮을 것
    -
구매할 수 있는 가격일 것 / 그렇게 큰 부담을 주는 가격은 아닐 것

거주성이나 편의성 보다는 상당히 스포츠성에 중점을 둔 조건들이라고 보면 된다. 각각의 항목들에 대해 이유를 부연하면 이렇다.


+ 차가 크지 않을 것

저는 큰 차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큰 차' 라는게 좀 애매할 수 있는데, 범위를 좀 좁혀보자면 SUV나 세단이 아니었으면 했다.

"너무 작지 않아요?"

가장 마음에 들었던 사이즈는 소형차이다. 그런데 다들 아시다시피 이 소형차라는게 정말 애매한 세그먼트라... 

CC 단위로 세금을 때리는 한국에서는 세금은 세금대로 내고 비좁아 터진 그런 비운의 세그먼트 되겠다

사고 났을 때의 안전성은 물론 메이커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그 크기로 미루어 보아 경차와 준중형 사이의 애매한 위치고, 아예 타겟 고객층도 준중형에 밀려 천대받는 뭐 그런 세그먼트다. 유럽에선 B 세그먼트로 분류하던가 그럴 것이다.

그렇다고 작은 차체를 살려 무게 대비 마력이 높은가 하면 그것도 아닌 것이, 배기량을 중심으로 셋팅되어 있는 한국의 자동차세법과 분류법 때문에 1,600cc 이상의 엔진을 달지도 못한다. 그렇다고 국산차 기준으로 볼 때 그렇게 폭발적인 리터당 마력 비율을 뽑아주는 것도 아니고...

여튼 애매하다. 그런데 이런 소형차를 봤던 이유는...

"작아서 경쾌하고 편해요!"

큰 차를 몰 때 사람들이 얘기하는, 혹은 최소한 제 주변의 사람들이 얘기하는 편리한 점은 다른 차들이 접근할 때 조심스러워 한다, 왠지 사고 나도 안전할 것 같다, 넓어서 좋다, 시야가 좋다 뭐 이런 것들이 있다. 이 부분은 사람들마다 생각이 다를 수 있으니 그냥 그러려니 하자.

저도 SUV를 몰았었고 물론 이런 편리한 부분들이 있다는 점은 알겠는데, 그렇다고 이런 부분들이 큰 메리트로 다가오진 않았다. 도리어 덩치에서 오는 둔중함과 무거움, 그리고 주차나 골목 운전과 같은 생활 속의 불편함 등이 더 부각되었을 뿐이었다. 역시 개인적인 경험과 느낌이니 그러려니 하도록 하자.

그래서 저는 도리어 작은 차를 선호한다. 작고, 경쾌하고, 편하다. 거주성은 뭐... 그 안에서 계속 살 건가? 앉아있을 때, 운전할 때만 편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 무게 중심이 낮을 것

차알못 치고는 좀 괴상한 요구조건이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무슨 이런 전문적인 조건을 내세웠단 말인가.

이는 SUV로 운전을 시작했던 제 개인적인 경험을 반영한다.

구형 소렌토를 몰았었는데, SUV는 아시다들시피 꽤나 껑충하고 동작이 굼뜨다. 그리고 코너라도 좀 급격하게 돌아나갈라 치면 휘청휘청 하니 옆으로 넘어갈 것 같은 불안감을 준다SUV 스포츠 드라이빙을 했다는 얘기는 아니다

그런 부분들이 저를 좀 불안하게 했던 것 같다. 그래서 안정적이고 무게 중심이 낮은 차를 선호하게 됐다.

 

+ 후륜구동일 것

이제 차알못이 얘기하면 본격 허세로 보일 만한 항목이다. 왜 하필 후륜구동인가?

저는 어렸을 적부터 비밀스런 욕망을 한 가지 가지고 있었는데, 드리프트에 대한 꿈이 바로 그것이다알파벳 4번째 글자를 상징으로 삼는 모 만화 때문은 아니다

처음에는 아무 차나 다 되는 줄 알았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후륜차만 가능하다고 하더라. 이게 중학교 때 부터의 막연한 꿈이 됐다.

그 외에도 스포츠 성향을 지닌 챠령들이 대개 후륜구동이라는 부분도 한 몫 했다. 제가 차를 구매할 때 가장 우선적으로 보던 조건 중 하나가 스포츠성, 혹은 동작의 날렵함이나 직결성 이었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성향은 아니다

차알못 치고는 꽤나 건방진 조건이지만, 여튼 이런 조건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 수동을 살 수 있을 것

이것도 아이러니 하다고 느낄 수 있는데, 여긴 분명한 이유가 있다.

제 차가 없던 시절에도 운전을 할 기회가 있었고 타고 다니는 차도 있었는데, 수동 운전에서 저는 매우 큰 매력을 느꼈던 것이다. 많은 분들이 이야기하는 소위 수동 운전의 불편함은 거의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타면 도가니 나간다고 그렇게들 말리셨다

게다가 이전에 타던 오토 차량으로 생애 첫 트랙 경험을 했을 때 가장 답답했던 것 중 하나가 오토 미션의 변속 로직이었다. 분명 이 부분에서는 낮은 기어로 높은 힘을 내어 주파해야 하는 상황인데 매우 주관이 뚜렸했던 미션이 높은 단의 기어를 계속 물고 있어 속이 뒤집어졌던 것이다.

수동 미션은 제 판단으로 조정할 수 있는 더 큰 자유를 부여한다고 생각한다. 뭔가 중2병 스러워 보이는 것은 착각이다 나의 자유를 위하여...!

그 직결감은 느껴본 사람만 평가할 수 있을 것이 아닐까 싶다.

 

+ 구매할 수 있고 크게 부담스럽지 않은 가격일 것

어찌 보면 가장 중요한 어찌가 아니라 확실한 것 같은데 요건이다.

굳이 빚을 내서까지 취미와 취향이 다분히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차를 사고 싶진 않았다. 제가 감당할 수 있는 선에서 그쳤으면 했던 것이다.

그 돈이면 다른 것도 살 수 있지 않아?”

정말 많이 들었다. 괜히 세간에 그 돈이면 빌런 이라고 불리는 것이 아닌 듯 하다. 그리고 그들은 정말 집요하다

물론 86은 가격이 매우 만만찮다. 세계에서 가장 가격이 높게 책정된 국가중 하나가 한국일 정도니까. '사회에 나온지 얼마 안된 청년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엔트리급 스포츠 카' 라는 모토가 엄청나게 무색해지는 가격이다. 청년들을 빚더미에 앉힐 생각이냐?

사실 이 금액이면 조금 더 보태면 BMW 3시리즈, 혹은 아우디의 A4나 벤츠 C클래스도 넘볼 수 있는 가격이다. 국산으로 눈을 돌리면 소나타를 넘어서서 그랜저도 어렴풋이 눈에 들어올 법 하다. 혹은 아반떼를 뽑아 그만큼 튜닝칠을 할 수도 있다

이런 성향을 가진 이 금액대 차가 별로 없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86을 구매한 건, 이런 성향을 가진 차가 매우 드물기 때문이다.

이 조건들은 언뜻 보면 그렇게 특이할 것 없는 것처럼 보이는데, 생각해보라. 이 조건들을 동시에 만족하는 차는 그렇게 많지 않다.

가격 부분을 제외하고 볼 때, 2018년 초 현 시점에서 저 조건에 부합하는 차는 포르쉐 카이만, 마쯔다 MX-5, 혼다 S660, 로터스 앨리스 뭐 이 정도가 아닐까 싶다.이 중 제일 만만한 것이 MX-5나 S660인데, 뭐 수입까지는 어떻게 했다 하더라도 우핸들에 익숙해질 자신이 도저히 없었다. 또 통관과 관세 문제도 있고.

제가 생각하는 것 외에도 이런 종류나 성향을 지닌 차가 있으면 좀 알려달라. 차알못이라 식견이 짧다.

결국 제가 86을 산 것은 사실상 선택의 여지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한 가지 사족을 달자면, 일본이나 미국에서 86이나 를 들여오는 것 까지 고려했었으나 결국 기각했다. 일본에서 들여올 경우 우핸들 문제도 있고, 어떻게든 한국에 들여온다손 치더라도 워런티 문제나 그 과정에서 대행사를 낀다고 해도 쏟아야 할 시간과 노력이 만만찮다고 느껴서이다.

어찌됐든 결과적으로 나는 이런 꽤나 복잡하고 오랜 고민을 거쳐서 지금은 86을 타고 있다.

하지만 아무도 이 논리를 합당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 슬프다면 슬픈 부분이다. 그래도 그 가격은 좀 아니지 않니? 아 쫌!


3. 그래서 지금은 어때요? 후회해요?


아니오.

이 단 한 마디로 대답할 수 있다. 정말? 그 이유는 이렇다.


+ 즐거움이 크다

BMW에서 모토로 밀었던 문구 중 하나가 Sheer Driving Experience 인데, 저는 이 모토가 정말 잘 어울리는 차 중 하나가 86이라고 생각한다.

차를 단순히 교통수단 중 하나라고 치부하면 절대 느끼지 못할 감각적인 즐거움이 있다. 물론 경우의 차이는 있지만 저는 운전을 단순한 노동이 아닌 레저의 일종이라는 관점을 가지고 있는 사람 중 하나이기 때문에 그 부분이 더욱 체감되는 듯 하다.

제가 원하는 대로 움직여 주는 것의 즐거움을 공감할 수 있는 분들이 얼마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이건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을 듯 하다.

이 차는 운전이 매우 재미있는 차다. 만약 스티어링 휠을 잡아볼 기회가 있다면 그리고 이전에 탔던 차들이 평범하다면 뭔가 거동이 다르다는 것을 느낄 것이다. 그리고 운전의 즐거움이 어떤 것인지도 알게될지도 모른다.


+ 생각보다 불편하지 않다

애초에 저는 이 차를 패밀리카 비슷한 무언가로 생각하고 산 것이 아니기 때문에 타면서 불편함을 느끼지는 못했다. 만약 패밀리카로 생각하신다면 얘기는 다르지만.

차주로서 얘기하건데 뒷좌석에 누군가를 태운다는 것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 그 사람을 고문하겠다고 선언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래도 누군가를 태워야한다면 이런 팁이 있다. 먼저 상대방의 발을 깨끗히 닦고 신발을 벗고 양반다리를 하게 하는 것이다. 신장 180 이하의 보통 사이즈의 사람들이라면 초장거리를 제외하고는 그럭저럭 탈만한 그림이 나온다. 생각보다 편하다

여튼, 태울 수 있는 사람을 운전자 외 1명으로 생각하면 일상생활에서 전혀 불편한 점이 없다. 1명을 태운다고 가정하면 도리어 뒷좌석을 접어 트렁크 공간을 넓힐 수 있으므로 생각보다 엄청난 적재량에 놀랄 수도 있다. 4개가 그냥 들어간다. 게다가 젠쿱처럼 뒷좌석과 트렁크 사이에 어떤 프레임 같은 것이 있는 것도 아니니 그 가공할 편의성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저처럼 마트카로 쓰면 적재량 때문에 통장이 바닥을 보이는 것도 금방이다

그리고 이게 장점이 될지 단점이 될지는 모르겠으나 차가 작아서 운행이 편리하다. 무슨 말이냐고? 주차할 때 공간 눈치 덜 봐도 되고, 스타렉스처럼 차선을 물고 달리는지 차선 안에서 달리는지 전전긍긍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대신 그만큼 실내는 비좁아진다

다른 분들은 모르겠지만 저는 86을 매우 재미지고 알차게 타고 있다고 생각한다. 마트 가고 마실 다니는게 알찬 건지는 논외로 하자 더불어 처음부터 사고 싶은 차를 샀다는 점에서 다른 차 뽐뿌가 오지 않는 것도 큰 부분이다.

마음에 드는 차를 타는 것은 정말 좋은 일인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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