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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조가 가득한 모터 라이프

혼다 레블Rebel 500 – 다시 두 바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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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김랜덤 입니다.

격조했습니다. 그간 매우 게을러서 업데이트가 소홀했습니다. 변명이 아니라, 그냥 진짜 게을렀습니다, 예. 뻔뻔하기 그지없다

업데이트 안 한다고 유무형의 협박을 종종 받았는데, 소소한 기록 목적으로 시작한 블로그를 읽어 주시는 분들이 있다는 걸 깨달은 즐거운 사건이었습니다. 아, 물론 저는 칩거함으로써 그 위협이 현실화되지 않도록 노력했습니다. 더욱 게을러 짐

그간 많은 일들이 있었으니 하나씩, 조금씩, 빠르다고는 할 수 없지만 다시 글을 써보겠습니다.

 

혼다 레블Rebel 500 – 다시 두 바퀴로
Honda Rebel 500 – Return to two wheels

 

1. 두 바퀴에 대한 욕망이 남아있다

저는 그간 3종의 바이크를 거쳐왔다. S&T 트로이125, 두카티Ducati 하이퍼모타드Hypermotard 796, 혼다 MSX 125 순으로. 어째 장르가 천차만별이다. 그 만큼 갈피를 못 잡고 방황했다는 의미인 것 같기도 하다.

S&T 트로이 125. 제 두 바퀴 인생의 시작이었다

 S&T 트로이125는 제 입문 바이크였다. 그간 오토바이를 한 번도 타보지 않아서 안전하게 학원에서 면허를 산 사람인 저는, 으레 그러하듯 학원에서 탔던 미라쥬250을 살까 말까 하는 갈등을 억누르고 새로운 바이크를 고르는 데 성공했다. 아 잠깐, 이거 혹시 저만 그런 건가? 전 운전면허도 학원에서 봉고3로 땄는데, 그 때도 1톤 트럭을 매우 사고 싶었던 경험이 있다. 어쨌든, 트로이125를 선택한 이유는 온로드&오프로드를 둘 다 커버할 수 있는 듀얼 퍼포즈Dual Purpose 장르의 바이크를 타고 싶었기 때문인데, 항상 거지였던 제가 선택할 수 있는 범위에는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꽤나 만족하면서 탔다.

트로이125는 물론 매우 즐거운 첫경험이었지만, 사람들이 겪곤 하는 출력의 부족함은 예외 없이 제게도 찾아왔고, 그래서 현장 네고를 당하며 이를 방출하게 된다.

2018.01.21 - [망조가 가득한 모터 라이프] - S&T 트로이 125 구매기 - 영혼까지 털린 첫 라이딩

 

죽을 뻔한 적이 너무 많아서 무섭지만 그리운 하이퍼모타드 796

두 번째 바이크는 두카티 하이퍼모타드 796 이었다. 담은 작지만 도심에서 빨리 다니고 싶었던 저는, 바이크 시장에서 두카티가 지니는 입지와 그 브랜드의 역사 및 철학을 매우 흠모하던지라 기왕 살 거 라는 생각으로 무지성 구매를 시도하게 된다. 결론만 얘기하면 이는 실패한 선택이었는데, 비루한 제 육신과 운동신경에 비해 너무나도 오버 스펙이었던 까닭에 저는 이 검고 흉폭한 바이크에 적응하는데 실패했다. 진짜 죽을 것 같아서 못 타겠더라. 자꾸 커져만 가는 두려움에 바이크를 타는 빈도가 줄어들고,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어 판매를 결정했다.

아, 행여나 하여 말씀드리는데 엔진에 구멍이 뚫렸던 그 모종의 사건은 이 바이크를 향한 저의 애정에 흠집을 입히지는 못했다. 오히려 반대로 생각하면 엔진이 새것이 되어 좋았다고나 할까.

2018.01.18 - [망조가 가득한 모터 라이프] - 하이퍼모타드 물피도주 건 - 내 바이크는 누가 넘어뜨렸나

 

만만한 귀요미였다

 세 번째 바이크는 혼다의 MSX125, 혹칭 그롬Grom이었다. 작고 귀여운 이 바이크는 참으로 특이하고 재밌었지만, 모종의 사유로 빠르게 방출하게 됐다.

2018.01.20 - [망조가 가득한 모터 라이프] - 혼다 MSX125 레버 DIY - 공임이 아까운 자여, 직접 바이크 레버를 바꿔보자

 

이렇게 제 삶에서 두 바퀴는 잠시 종적을 감췄다. 갖고는 있고 싶었는데 아무래도 원동기는 보험이나 세금의 문제가 있다 보니, 그냥 가지고 있는 것도 어느 정도 금전적 부분을 고려해야 한다. 게다가 기계장치이다 보니, 가만히 놔두는 것은 전혀 좋은 관리법이 아니다.

하지만 계속 미련은 남아있었다.

 

2. 역병과도 같이 불어 닥친 두 바퀴 열풍

범 세계적인 COVID-19의 유행과 함께 소비자들은 극적인 행동의 변화를 보이는데, 집에만 갇혀 있다 단체로 미쳐버린 것인지 스스로의 욕망에 충실해지는 소비 행태가 급증하기 시작한 것이다. 사실상 사회적 셧다운이 1년 이상 지속된 2020년 말-2021년 중순까지 이런 욕망의 소비 곡선은 가파르게 증가하기 시작하더니, 외딴 유배지라 여겨졌던 바이크 쪽에도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귀찮아서 자료를 찾아보진 않았지만, 동기간 전 세계적으로 바이크 판매량이 폭증했다고 한다.

여기 까지만 해도 그러려니 하겠는데 주변에서도 비슷한 일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제 친구 중에 데저트이글DesertEagle이라고 유튜버가 하나 있는데, 이 친구가 단톡방 하나를 운영하고 있다. 어느 날 이 친구가 봄에 소소하게 오도바이를 하나 사더니, 갑자기 폭주하여 여기저기 바이크를 퍼트리고 다니기 시작한 것. 심리학에는 3의 법칙이라는 오묘한 것이 있는데, 간단히 얘기하면 동조자가 3인 이상이 될 때부터 그 집단이 발산하는 영향력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는 것이다. 이 단톡방에서 벌어진 일은 가히 바이크 역병이라 불릴 만했다. 전혀 관심 없어 보이던 사람들도 내면의 욕망을 자극받았는지 마구 구매해대기 시작했으며, 결국 4개월 가량 지난 다음에는 투어 가자고 하면 10명 정도가 모이는 대집단이 되고야 말았다. 흥미롭군.

자랑스러워하는 역병 대장숙주와 감염자1, 그리고 감염자의 최후

가뜩이나 욕망을 숨긴 찐따 상태였던 저는 엄청나게 큰 영향을 받은 나머지 무지성으로 바이크를 구매해버리고 말았다. 하하.

 

 3. 조건이 까다롭다

앞서 여러 장르의 바이크를 거쳐옴을 논했는데, 이는 좋게 말하면 다양한 경험을 한 것이고 직설적으로 표현하면 뭘 타고 싶은 지 몰랐던 것이라 할 수 있다. 어떤 것이든 마찬가지로, 특화된 여러 종류가 존재할 경우 본인의 성향을 잘 따져 가장 부합하는 장르로 가는 것이 좋다.

이번에 제가 타고 싶은 바이크를 고르는 데 주안점을 둔 요소들은 다음과 같다.

 

▶ 배기량은 쿼터 이상-리터 이하일 것

리터급 바이크를 타 본 적은 없지만, 제가 너무나도 무서워했던 하이퍼모타드 796은 배기량이 803cc였다. 기어비와 엔진의 셋팅에 따라 다르겠지만 이로 반추할 때 쫄보인 저는 오버 리터급 바이크를 샀을 때 매우 후회하여 796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그렇다고 쿼터급을 사기엔, 125cc 바이크들과 미라쥬250의 경험으로 미루어 보아 출력 부족을 호소하며 후회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그러므로 최소 쿼터는 넘는, 하지만 리터에는 모자라는 배기량이 적당할 듯싶었다.

하지만 796도 비슷한 조건이었는데 무서워했던 걸 보면… 운동특성을 좀 더 유심히 보기로 했다.

 

 장르는 클래식 or 크루저

하이퍼모타드 796이 너무 무서웠던 영향인지, 이번에 타는 바이크는 최대한 좀 편하게 타고 싶었다. 요즘 슬슬 나이가 들어가는지 예전에는 거들떠도 안 보던 크루저 장르가 슬슬 눈에 들어오기도 했다. 그렇다고 하레이 할리 데이빗슨이 막 멋있어 보이고 그런 건 아니고, 레트로 스타일과 올드룩 카페 레이서들을 자꾸 봐서 이런 영향이 생긴 걸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클래식이나 크루저 계열의 바이크에 점점 흥미가 생기기 시작했다.

 

 스포티할 것

여느 운동성이 강조되는 것들이 다 그러하듯 속도&출력&운동성 과 재미는 반비례하는 게 대부분이지만. 그런데 또 사람이 간사한 게, 나름 모터 스포츠를 즐기고자 노력하는 사람이라 또 스포티함을 포기하기는 좀 그랬다. 대체 어쩌라는 건지

그래서, 어찌 보면 크루저 장르와는 상반되는 속성인 스포티함을 갖춘 바이크를 사고 싶었다. 뭐 엄청난 건 아니고 가벼운 와인딩이나 필요할 때 빠른 거동을 할 수 있는 정도?

 

 부담 가지 않는 가격대에 유지보수가 편할 것

누구든 바라지 않는 자가 있겠는가?

첨언하면, 같은 일본 회사지만 정신나간 가격을 자랑하는 토요타 코리아와는 달리 혼다 코리아는 마치 국산이 아닐까 싶은 가격에 부품을 제공하고 있다. 반성해라 토요타 코리아….

 

 여유로운 커스터마이징 폭이 있을 것

사용자화는 하기 나름이라 좀 애매한 항목인데, 애프터 마켓 볼트온 파츠들이 많았으면 했다. 저는 외장에 크게 신경 쓰는 사람은 아니지만 할 수 있는데 안 하는 것과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맨바닥에서 시작해야 하는 것은 다르잖은가.

  

4. 골라보자

스포츠성과 다이나믹을 중시하던 제게 무슨 변화가 생긴 건지 이번에는 좀 얌전하고 편한 클래식이나 크루저가 타고 싶었다 늙은 게지. 카페 레이서 아웃핏이 끌려서 커스텀도 고려하는 중이었고. 그래서 몇 가지를 꼽아봤는데, 각각의 개인적인 장단점을 나열해보고 장고 끝에 혼다 레블 500을 선택했다.

베넬리Benelli 502c

디아벨 판박이

  • 이 차는 완성된 디자인이라 건드릴 것이 없다. 커스터마이징이 애매한 것인데, 실제로도 모든 부품의 디자인이 조화를 이루고 있어 뭔가를 더하거나 빼면 굉장히 어색해진다. 좋게 말하면 손 댈 것이 없고, 다른 방향으로는 심심하다
  • 별개로 두카티 디아벨의 주니어클론 이라는, 좋은 쪽과 나쁜 쪽 모두에 해당하는 이야기를 듣고 있다
  • 베넬리 자체는 역사와 전통의 브랜드이긴 한데, 중간에 맥이 끊기더니 이젠 사실상 중국의 브랜드가 됐다. 지금의 라인업과 기술력으로 보면 뭔가 꺼림칙하다

 

KR모터스 아퀼라Aquila GV300

퀵기사님들의 뉴 애마

  • 제일 크게 고민했던 바이크인데, 결론만 말하면 장점: 국산, 단점: 국산
  • 자체 개발 쿼터급 V트윈 엔진이라는 말도 안 되는 스펙의 소유자라 매우 혹했다. 게다가 가격에서는 뭐 거의 경쟁자들을 찢었다고 보면 될 듯
  • 국산의 장점은 당연 유지보수인데, 순정 부품의 가격을 보면, 부품 사서 차 만드는 게 완성차 구매하는 것보다 싸게 보일 지경이다. 정말 대단한 가격이다
  • 그런데 맨날 할리, 인디언, 빅토리, 트라이엄프 뭐 이런 회사들 바이크 보다가 실물을 보니 마감이나 부품이 굉장히… 뭐랄까… 험블? 어떻게 보면 커스텀의 전제이긴 한데… 그리고 가격차가 있는 만큼 직접 비교는 어불성설이기도 한데… 개인적인 취향으로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 무광 검정이 좋은 도장이긴 한데, 이게 경우에 따라서 도난 차량 락카 도색처럼 보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줬다

 

로얄 엔필드Royal Enfield 클래식Classic 500

카레맛(영국향 첨가)

  • 2순위로 고민했던 카레 오토바이. 특히 돈 조금 더 주고 크롬 색상을 구매하는 것을 매우 진지하게 생각했었다
  • 이 가격에 영국 감성 카레맛 첨가 느끼기 쉽지 않다. 가격적 메리트가 엄청나다
  •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장점이자 단점은 500cc 대배기량 단기통 엔진. 125cc 정도는 귀여워보이는 이 거대한 단기통이 줄 혼돈 파괴 망가 진동을 생각하면 자동으로 턱이 떨리는 느낌이다
  • 그런데 개선을 위해 단종이라고 한다… 아니, 이보세요….

 

왼쪽이 벌칸, 오른쪽이 SR400

이 외에도 야마하YAMAHA SR400이나 카와사키Kawasaki 벌칸Vulcan 등을 고려해봤지만, 결국 선택한 것은 혼다 레블 500 이었다. 제가 생각하던 조건들이 전부 부합하는 바이크였던 것.

오해해서는 안되는 것이, 위에 나열한 3종의 바이크는 저도 고민을 많이 했을 정도로 모두 훌륭하고 매력적인 바이크다. 다만 제 지향점에 레블 500이 더 부합했을 뿐이다. 사실 돈만 있으면 하나씩 다 사고 싶다.

 

5. 구매조차 녹록잖다

구매도 좀 웃기게 진행됐다.

앞서 언급했듯 다시 바이크 타고 싶어서 속앓이를 한 지 꽤 된 상태였다. 어느 날 스트롱 이라는 친구가 강동 트라이엄프 매장에 구경하러 간다길래 심심해서 합류하기로 했는데, 제가 도착해서 본 것은 날인된 계약서 한 장이었다. 아니 이런 대단한 친구를 봤나.

바로 구매해버린 대단한 자 Strong Lee.와, 바이크를 어루만지며 애절해하는 저

그 뒤로 2주 가량을 바이크 타는 꿈을 꾼다던가, 친구에게 오토바이 사고 싶다고 카톡으로 횡설수설 한다던가 하는 정신병적 발작을 일으키다가 결국 이러다가 큰일나겠다 싶어 마음을 다잡고 구매를 결심했다.

그런데 혼다 모터사이클 코리아 전 지점에 전화를 돌려봐도 레블 500은 인기기종이라 이미 예약이 종료 됐다거나 순번이 50번대 이후 라던가 하는 것이 아닌가. 품귀 현상을 일으킬 정도로 인기가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는데. 생각해보라. 취미용의 크루저 장르로서는 애매하기 그지없는 미들급의 배기량에, 정통 크루저를 만들던 브랜드도 아니고, 무엇보다 무난하고 심심하기 그지없는 바이크라는 무특색의 특색을 갖춘 혼다에서 만드는 바이크다. 특색 강한 장르인 크루저를 표현해내기엔 부족하다는 평판이다. 게다가 입문용으로 잠깐 타고 갈아타기에는 가격도 애매하게 비싼 편이라 완전 입문용으로는 적절치 못한 편이다. 그런데도 이렇게 인기가 있다니, 이해 못할 노릇이다. 가지지 못해서 까는 건가

이 심심하게 생긴게 이렇게 인기가 많을 줄은

배후의 사정을 들어보니, 혼다 모터사이클 코리아는 수요량 예측에 실패했고, 전 세계적으로 COVID-19 때문에 집에 갇혀 있던 사람들이 집단 발작을 일으켜 혼자 가능한 거리두기 스포츠인 바이크 붐이 일어 내수든 수출이든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했으며, 역시 COVID-19 및 고령화로 인해 일본 본토의 공장 가동율이 줄어 공급에도 차질이 발생했다고 한다. 대환장의 삼박자가 쿵짝쿵짝 어우러져 품귀 현상을 빚어낸 것.

결국 중고로 눈을 돌려 파쏘PASSO나 바튜매 같은 곳의 장터에 여러 날 매복해봤으나, 품귀에 힘입어 중고가가 출고가보다 높아지는 절망적인 결과가 도출되고 말았다. 출고 3개월 지나고 3,000km 탄 차량이, 물론 소정의 튜닝이 되어있긴 하지만 출고가보다 100만원 정도가 가산된 금액에 판매되고 있는 실정. 하지만 신차 출고가 요원하니 별 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렇게 사흘 밤낮을 벌게진 눈으로 매물들을 응시하던 중 한 물건이 등장했다. 이 시장의 구조를 잘 모르지만 본사에서 판매하는 물량 외에 대리점 불하 물량이 따로 있는 듯하고, 제가 찾은 물건은 그런 것이었다. 다만 소정의 마진이 붙어있었는데, 정신을 잃고 날뛰는 중고가에 비하면 합리적인 정도라 고민은 길지 않았다. 쿨내나는 사장님과 쿨하게 바로 잔금 박고 탁송 받기로 계약 완료.

찾았는데, 있었습니다

문제는 제가 구매한 날이 토요일이라 번호판이고 뭐고 아무것도 진행을 할 수 없어 사기만 하고 탈 수가 없었다는 것뿐. 친구들과 커피 마시며 불과 200m 떨어진 거리에 본인의 바이크가 있는데도 타지 못한다는 고통을 감내해야 할 뿐이었다. 이거 생각보다 괴롭더라. 그나마 손에 쥔 서류가 꿈이 아님을 증명해줄 뿐.

 

6. 이것은 훌륭한 바이크다

바로 탁송 받은 따끈따끈한 신품

그렇게 인고의 시간을 거쳐 월요일이 밝자마자 바로 등록…을 하러 가진 못하고, 저는 사노비인지라 일단 출근했다. 점심시간에 모오오옵시 중요한 일이 있다고 둘러댄 후 바로 회사에서 제일 가까운 자동차등록사업소에 뛰어가 등록하고 번호판 수령 완료. 그리고 드디어, 견물생심의 고통을 피하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미루었던 탁송을 받아 합법적인 새 바이크 인생 시즌 2를 시작할 수 있었다. 만세!

글 작성 시점에서는 한 2,000km 정도 주행한 상태라 몹시 게을렀다는 얘기 어느 정도 실소유자 입장에서의 후기를 적을 수 있겠다.

 

앉기가 미친듯이 편하다

서서/앉아서 높이의 비교. 추잡한 자세와는 별게로 편함이 느껴지지 않는가

레블 500은 시트고가 690mm 좋은 숫자 다. 단순 시트고 표기로는 얼마나 높은 지 감이 안 오는 경우가 많은데, 저 또한 그렇다. 간단히 말하면 기마자세 한 그대로 걸어가서 뒤에서 착석 가능한 정도 라고나 할까.

예전에 하이퍼모타드 796 탈 때는 정말 힘들었었다. 일단 샐비지 진 같은 신축성 없는 바지 입는 날은 절대 못 탄다고 보면 되고, 사정없이 치켜 올라간 후미 덕분에 앉기 전엔 심호흡 한 번 하고 돌려차기 하는 기분으로 올라서야 했다. 이 하이퍼모타드 796의 시트고가 스펙 상으로 825mm 정도.

단순히 숫자로 135mm, 불과 13.5cm 차이일 뿐인데 이 편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한국 표준 신체 치수 기준으로 키 150cm 이상만 되면 누구든지 편하게 착석 가능할 듯.

뒤가 슬며시 치켜 올라간 형태의 순정 시트는 엉덩이를 안정적으로 잘 잡아준다. 합성피혁 재질인데 마찰력이 상당해서 엉덩이가 밀리거나 노는 경우는 없었다. 개인적으로는 만족스러웠는데, 커스텀으로 충전재를 좀 더 채워 넣거나 하면 훨씬 편해진다는 얘기를 듣긴 했다. 아직까진 별 생각 없다.

 

매우 잘 눕고 조작이 쉽다

체인 끈이 짧아 이건 다른 전문가들의 의견을 보는 게 좋겠지만 개인적인 감상을 남겨본다.

위에 언급했던, 그간 탔던 바이크 3종에 비해 제일 시트고가 낮은데, 이게 엔진고가 낮다는 얘기가 되는지도 모르겠다. 무게 중심이 낮다는 얘긴 들었는데 정확히 어느정도 인지는 잘….

저도 리뷰들을 볼 때 눈에 띄던 문구가 ‘코너링에서 느껴지는 의외의 스포츠성’ 이었는데, 그게 무슨 소린지 확실히 알겠다. 크루저 장르의 특징인지도 모르겠는데, 다른 크루저 장르의 바이크를 타보지 않아서 확실하진 않지만 이건 매우 잘 눕는다. 코너에서 몸을 기울이면 자연스레 바이크가 같이 기우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실제 운전 중량이 거의 190kg에 육박하는 것을 생각해보면 의외의 특성이다.

그런데 이게 불안하게 눕는다는 얘기가 절대 아니다. 예컨대 하이퍼모타드 796 같은 경우는, 바이크를 눕히려 들면 저는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했다. 시트고가 높아 몸뚱이가 한참 위에 있는데 이걸 기울인다는 건 보통 일이 아니었다. 바닥에 내동댕이친다는 각오로 통장에 찍힐 마이너스 숫자들은 애써 잊고 기울여야 겨우 몇 도 뉘이는 게 가능할 정도. 뭐, 이건 제가 겁이 많고 잘 못 타서 그렇기도 하다.

반면 레블 500은 이 기울어짐이 너무나도 자연스럽고 편하다. 몸 자체가 낮은 곳에 있기에 여차하면 발로 지지하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매우 안정적으로, 겁 많은 저도 부담 없이 눕히게 된다. 실제로 좀 전투적으로 타시는 분들의 레블 500은 사이드 스텝 가장자리가 몽창 갈려 있는 모습을 볼 수도 있다. 대체 어떻게 타시는 거야 이 사람들은….

다만 크루저 장르인지라 휠베이스가 약 1.5m로 긴 편이므로, 엄청나게 스포티한 거동을 보여주진 않는다. 어디까지나 생각보다 스포티한 움직임이라는 것. 유턴할 때 좀 힘들다는 얘기다.

 

브레이크는 밀리는 것 같다

브레이크는 니신Nissin제 브레이크가 장착되어 있다. ABS가 달려있는 나름 최신 바이크인데, 중량이 무거워서 그런 건지 브레이크의 답력이 약한 건지 모르겠지만 브레이크 성능이 조금 아쉬운 면이 있다.

실제로 타다가 ABS를 터트릴 정도로 급하게 멈춰야 했던 적이 한 번 있었는데, ABS 덕에 그 정도 거리에서 멈춘 건지 아니면 밀린 건지 의견이 분분하지만 개인적인 느낌으로는 브레이크가 좀 많이 밀린다는 느낌이었다. 비교하기 적절하진 않지만 잭나이프 될까 두려워 풀 브레이킹을 해 본 적이 없는 하이퍼모타드 796과는 많이 다른 성향이었다.

더불어 앞 브레이크만 잡았을 때와 뒷 브레이크를 같이 잡을 때의 제동력이 굉장히 차이 난다. 당연한 얘기지만 뒤를 같이 잡았을 때 훨씬 잘 서는데, 다른 바이크와 그 정도의 차이가 심하다. 안전한 제동을 위해서는 뒷 브레이크를 함께 잡아주는 게 여러 모로 이롭다.

그런고로 정지 거리를 길게 잡는 습관이 생겼다. 브레이크의 모자람을 느끼는 부분은 패드 교체로 해결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서스펜션: 앞은 괜찮은데 뒤는 좀

앞은 괜찮은데 뒤는 좀 그렇다

가장 불만인 부분은 의외로 서스펜션이다. 특히 뒷 서스펜션.

앞은 솔직히 잘 모르겠다. 도립식이 더 뛰어나다는 생각은 있지만, 체감할 정도로 강하게 몰아붙여 탄 적이 없어서 그런지 노면 추종력도 괜찮고 털림도 없었다. 의외로 도로의 요철에서도 충격을 어느 정도 괜찮게 흡수해주며, 범프를 넘을 때도 불만이 생길 정도는 아니다. 조금 아쉽긴 한데 앞 서스펜션은 그럭저럭 괜찮다.

그런데 뒷 서스펜션은 얘기가 좀 다르다. 도로에 굴곡이 있을 때 그 충격을 엉덩이로 모두 전달해준다. 범프를 넘을 때는 각오하고 엉덩이를 들어야 한다. 크루저 장르의, 엉덩이 들기 애매한 포지션에도 불구하고 저는 꼬박꼬박 엉덩이를 드는 습관이 생겼다. 5단계 조절식인지라 꽤 여러 조합으로 변경해봤는데도 이건 변하지 않는다. 순정 뒷 서스펜션은 불만이다.

바이크 서스펜션은 차에 비해 비교적 저렴하다는 게 다행인가. 서스펜션 교체 생각이 간혹 난다.

 

연비는 매우 훌륭하다

12월은 너무 추웠다. 저는 나약한 자...

이런 장르의 바이크에 기대하면 안 되는 것 중 하나가 연비인데, 곰국 장인 혼다는 그간 쌓아온 기술력으로 PGM-FI 엔진을 박아 넣으며 이를 어느 정도 해소했다. 아니, 애초에 엔진 특성이 그런 건가?

그간 타며 측정해본 실연비는 시내주행 위주일 경우 22.5km/L, 중장거리가 포함될 경우엔 24.8km/L 정도 되는 듯하다. 평균 23km/L의 실연비라니, 실로 준수한 연비가 아닐 수 없다. 물론 스펙시트 상으로는 40.2km/L 인데 거기까진 바라지도 않는다.

게다가 이건 일반유 셋팅이다. 할리 데이비슨 마저 고급유 세팅으로 나오는 세상인데 일반유라니, 축복에 가까운 일이다. 어디서든 부담 없이 주유하고 막 굴릴 수 있다.

연료통 용량은 11.2L인데, 적지 않은 크기지만 저는 좀 애매함을 느꼈다. 바이크가 바이크다보니 주로 중장거리를 뛰게 되는데, 우수한 연비와의 시너지로 애매한 시점에서 연료가 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덕분에 연료가 반 이상 남아있어도 남들 주유할 때 같이 밥 먹이는 그런 습관이 생겼다.

 

힘은 좀 아쉽다

아무래도 엔진 덩치에 비해 힘이 조금 아쉽긴 하다

미들급은 처음이지만, 혼다 471cc 엔진의 특성인지 설정 탓인지, 혹은 차량 무게가 있어 그런지 힘은 좀 아쉬운 편이다.

4.4kgm의 토크는 작은 수치가 아니지만 아무래도 차의 무게가 있다보니 그런 것 같다. 가끔 급하게 가속이 필요할 때나 속도를 내서 치고 나가야 할 때, 아무리 다운쉬프팅을 해도 힘이 좀 아쉽다.

그렇다고 해서 빌빌댄다는 얘기는 또 아니다. 그럭저럭 여유롭게 다니기에는 충분한 힘을 제공한다. 아무래도 제 경험의 기준이 하이퍼모타드 796이어서 그렇게 느끼는 것일 듯하다.

 

편하다…!

이 바이크 최고의 장점인 것 같다.

이 미칠 듯한 편안함은, 진짜 하루 종일 타도 계속 탈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3개에 불과하지만 이전에 탔던 어떤 바이크에서도 느껴보지 못한 점이다.

네이키드에 가까운 크루저인데다 포지션도 미들 스텝이고, 심지어 저는 윈드 쉴드도 없지만 장거리 라이딩을 뛰며 주행풍을 다 맞아도 피곤이라는 생각조차 들지 않는다. 진짜 이거라면, 날씨만 괜찮으면 세계일주도 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

엔진에서 진동이 올라올 법도 한데 생각보다 두 개의 피스톤이 잘 상쇄해서 거의 느껴지지 않는 수준이고, 그로 인한 피로감도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손에 오는 진동은 감내할 만한 수준이다.

다른 크루저들도 이런 느낌인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시트 밑 공간은 좁다

최대한 우겨 넣어 보았습니다

으레 다른 바이크들이 그러하듯 레블 500도 시트 밑에 배터리가 있는데, 여유 공간이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여러 가지 추가 장치를 달기 마개조 좋아하는 저로서는 조금 아쉬운 부분이다. 블랙박스 장착하면서도 선정리를 매우 열심히 해서 겨우 우겨 넣을 수 있었다.

외부로 노출되거나 비를 맞히면 안 되는 장치들을 많이 추가하기는 좀 곤란할 듯하다.

 

풍요로운 애프터 마켓 부품과 자비로운 순정부품 가격

애프터 마켓은 마치 86의 그것이 연상될 정도로 활성화 되어있다. 북미에서 레블 500은 사용자화를 중요한 셀링 포인트로 내세우고 있는데 아마 그에 따른 것 인듯.

커스텀 바이크야 어느 모델이 출시돼도 각 개러지에서 기술력을 뽐내고자 제작하지만, 이 정도로 단순히 교체하는 방식으로 적용할 수 있는 서드 파티 부품이 다양한 바이크는 많지 않을 듯하다.

더불어 축복받은 혼다 모터사이클 코리아의 부품 가격 정책도 한 몫 한다. 저처럼 호작질 하다 순정 부품 갈아 먹는 경우가 많은 사람에게 있어서 이는 정말 좋은 것이다.

 

니그립이 힘들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완벽한 니그립을 잡을 수는 없었다

이 장르의 바이크에 니그립이 의미가 있는가는 잘 모르겠지만, 가급적이면 니그립을 잡고 타는 게 신상과 조작에 이롭다고 느껴온 저는 이게 조금 아쉬운 부분이다.

어느 정도의 스포티함을 갖추고 있는 만큼 니그립을 잡고 움직이면 뭔가 조작에 도움이 될 것 같은데, 시트와 라이딩 포지션과 더불어 구조적인 특성에 힘입어 여타 네이키드와 같이 니그립을 꽉 잡기는 힘든 구조다.

니그립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닌 것 같긴 하지만 다리가 닿는 프레임 부분에는 고무 재질의 부품이 덧대어져 있고 개별적으로 니그립 패드도 구매해서 부착해봤는데, 무릎이 연료통을 완전히 잡는 모양새는 나오지 않는다.

아, 제 다리가 짧아서 그런가...? 라는 생각이 퍼뜩 들긴 한다.

 

위와 같이 간단하게 그간 제가 레블 500을 타면서 느낀 점을 적어봤다. 저는 매우 만족스럽다. 출력이 좀 아쉽긴 한데, 아마 한동안은 기변 생각이 나지 않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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